글쓴이 보관물: litcoder

페낭 정착기

한국에서 페낭으로

한국에서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쿠알라룸프르를 거쳐 페낭으로 가는 비행편을 구했다.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기는 했지만, 두시간 전에 나와서 수속을 마치려면 가족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골랐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울먹이는 가족의 배웅을 뒤로 하고 타고 온 오후 비행기는 다음 연계되는 편이 8시간이나 떨어져 있어서 8시간동안이나 공항에서 버텨한다는 사실을 그다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었다.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자 두면 밤샘 쯤은 식은죽 먹기일 거라며…

쿠알라룸푸르에 내려서 페낭가는 비행기로 환승하려고 갔더니 입국심사하는 아저씨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면서 아직 시간 엄청 많이 남았는데 정말 들어 갈 거냐고 물어 본다. 배가 고팠다. 지난번 기억으로는 안에 가게들도 별로 없었기에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다시 KLIA2 공항으로 쪽으로 나왔다.

KLIA2는 마치 해외 자본의 각축장인것 같다. 이렇게 크게 지어 놓은 건물의 대부분이 외국계 프렌차이즈나 편의점들로 가득차 있어서 한국의 여느 동네와 같은 익숙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요즘엔 한국에서 안보이는 패밀리 마트도 있다. 돈을 내고 가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마땅히 앉아 있을 곳 마져 없는 이 공항에서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좀 앉아 있고 싶었지만, 커피를 줄이 려고 마음먹은 터여서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시간 보낼 곳이 없는지 여러곳을 검색해 봤다.

일전에 쿠알라룸프루 공항에서 아침까지 버티다가 에어로라인 버스를 타고 페낭으로 가는 여정을 고려했을때, 이 공항 안에 있는 저렴한 컨테이너 호텔에서 몇시간 자다가 출발하는 것을 생각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한 3시간정도 잘 수 있는 방이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3명이서 쓰는 12시간 짜리 방밖에 남은게 없었다. 게다가 가격이 대략 10만원정도나 하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다가 시간당 가격은 더 비싸지만, 2시간에 5만원 정도하는 플라자 프리미엄 라운지가 있어서 물어보니 방이 다 찼단다. 8시간을 너무 만만히 보고 아무 예약도 하지 않은 안일한 내 탓이다.

시간이 흐르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아지고, 맥도날드가게 안에는 햄버거 하나 시켜서 먹고 불편한 의자에 널부러진 사람들이 보이고, 스타벅스에는 이미 의자에 앉아서 잠든 사람들도 더이상 자리가 없고, 왠만한 기둥의 콘센트들을 중심으로 서로 낯선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충전을 하면서 각자의 핸드폰을 쳐다보는 풍경이 벌어진다. 나도 사람이 없는 충전기 기둥을 하나 찾아가서 핸드폰을 충전하고 핫스팟을 켰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새 이 근처는 부랑자 합숙소 마냥 땅바닥에 널부러져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었다.

호텔(?) – Econtel

지역과 금액만 정해지면 페낭에서 집구하기는 한국만큼 어렵지는 않다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말만 믿고 2주안에 집을 구하고 그 안에 checkout 하겠다며 agoda.com에서 싼 호텔을 찾아 다니다가 걸린게 Encotel 이라는 호텔이라는 이름의 값싼 모텔이었다. Agoda의 평점은 형편 없었지만 싼 가격에라도 비싼 수준의 서비스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보가 반영된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2주치를 선불결제 했다.

주차할 자리가 모자라서 이중 삼중 주차를 하는 상가 주차장을 이 호텔이 함께 사용한다는 것과 그나마도 시간당 1링깃의 주차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5시간 이상은 5링깃) 간신히 잡은 세마리의 모기와 수도 없는 개미들, 제대로 잠기지 않는 문과 방충망이 없음에도 닫히지 않는 창문, 침대 하나와 화장실로 꽉 차는 좁아터진 방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 주차장은 내 가장 큰 걱정 거리 이기도 했어서, Google street view로 이 호텔의 주차장 입구를 미리 확인했을 때는 안심했었는데 그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세배 비싼 다른 호텔의 주차장 이었을 줄이야…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30kg이 넘는 짐을 들고 옮긴 다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정보다 일찍 체크아웃 하게되면 남은 돈은 돌려 줄 수 있는지 카운터에 물어 봤다. 원래 자기네 정책상으로는 되는데 내 경우는 Agoda를 통해서 계약 했으니 그쪽으로 물어 보라고 한다. Agoda에서 보내주는 확약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는데 “체크인 14일 이내에 취소하면 결제 요금 전체가 수수료로 부과 됩니다. No show하면 환불 불가합니다.” 다시말해 전체 요금을 모두 선불한 내 경우는 국물도 없다는 거다.

연휴 기간에 집구하기

멋도 모르고 음력설 연휴기간을 끼고 입국 했더니 부동산 agent들이 연락을 안받는다. 중국계가 많은 이 지역에서도 음력 연휴는 큰 명절기간이다. iProperty.com하나면 모든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던 내 얄팍한 계획이 현실의 벽앞에 좌절되고 있었다. 페낭관련 카페에서 활동한다는 한국분의 연락처를 찾아서 급한 마음에 연락을 했더니 바로 다음에 세채의 집을 보여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니 두개의 쓰레기와 집 한 채라고 하는게 맞겠다. 급한 연락에 애써 준건 고맙지만 혼자 있을 집이니까 안 커도 된다고 말했음에도 굳이 방이 3개나 있는 낡은 집들을 보여주고나서 마지막에야 신축한 집을 보여주는건 일종의 판매 전략인건가?

마지막으로 본 집은 새로 지은 콘도의 스튜디오 룸이어서 크지도 않고 방도 깨끗해서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는데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월세 100링깃을 깎으려고 시도해 봤더니 의외로 바로 먹혔다. 더 불러 볼걸 그랬나… 하지만 사실은 연일 계속되는 개미와 모기의 협공으로 하루라도 빨리 호텔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 뿐이어서 안깎아 준다고 했어도 덥썩 물었을 것이다. 집주인 잘 만나는게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는 이 젊은 중국계 부부는 무척이나 호의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 후에 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깨달은게 있는데, 페낭 섬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view가 멋있지만 낮 동안 받는 태양 빛이 너무 많아서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이다. “일조량이 좋은” 집이 좋다는 건 거의 평생을 북위 38도 근방에서 살아온 나의 편견이었다.